글번호
68855
작성일
2019.02.27
수정일
2021.07.16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수
1561

십장생문 나전빗접(十長生文螺鈿梳函)

십장생문 나전빗접(十長生文螺鈿梳函) 첨부 이미지

십장생문 나전빗접(十長生文螺鈿梳函)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34.6cm / 폭 30.0cm / 깊이 29.8cm

 

화장하고 머리를 빗기 위해서 거울, 빗, 화장도구를 넣어두는 서랍이 달린 좌경을 사용한다. 그러나 지체 높은 집안의 부녀자들은 화장품과 함께 빗, 빗치개, 머리 장식품인 첩지․뒤꽂이․비녀 등의 소도구들을 넣기 위해 여러 개의 서랍이 달린 빗접이 필요하다.

이 나전빗접은 하부에 이 층의 서랍을 두고 상부는 함과 같이 뚜껑을 위로 열게 하여 공간을 마련했다. 전면 상단에는 대나무문을 배경으로 출세와 권력을 상징하는 봉황문, 장수를 뜻하는 소나무와 사슴을 문양대로 오려내는 줄음질과 음각으로 무늬를 새기는 조패법을 사용하여 시문했다. 중간 두 개의 서랍은 국수처럼 가늘고 길게 오려내어 끊어가는 끊음질기법으로 구갑문(龜匣紋)을 새겼다. 하단의 긴 서랍에는 장수를 뜻하는 구름, 해, 거북, 부부의 금실과 자손번창을 뜻하는 원앙과 연을 시문하여 여성들이 기원하는 바를 잘 표출하고 있다. 천판에는 복숭아와 운학, 양측면에는 대나무와 매화를 원형테두리 안에 두었다. 전면 상단의 바탕쇠에는 거북형 붙박이잠금장치가 달려 있고 각 모서리에 귀장석을 비롯한 거멀잡이장석들이 장식성을 강조하고 있다. 영롱한 자개빛과 정성들인 자개무늬들이 흑칠 바탕 위에 잘 드러나고 있으며 하단의 붉은 족통이 시각적으로 상체를 떠받치고 있다.

이런 형식의 나전빗접들은 나전칠기의 본산지인 통영지방에서 생산된 것이 대부분이며, 빗접은 좌경의 옆에 놓이게 되므로 좌경 또한 나전칠기 제품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첨부파일
첨부파일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