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 게시판 2.0 /data/nasdata/homepage/JWIZARD_7.0.0_smu/sites/museum/ ko 나전(螺鈿) 베갯모 /bbs/museum/845/68862/artclView.do 2019-02-27 16:06:25.0 총관리자 나전(螺鈿) 베갯모 20세기 초 12.4cm x 12.4cm 거치문과 빗살문으로 둘레를 치장하고 그 안에 모란문을 중심으로 한 쌍의 봉황과 여덟 마리의 새끼들을 시문하였다. 이는 구봉침(九鳳枕)이라 하여 자손의 번창을 축원하는 상징으로 일반적으로 일곱 마리의 봉황을 그린다. 모란과 봉황의 사실적 표현을 위해 정교한 음각선을 둘렀다. 소형의 네모난 베갯모는 남자아이가 사용하던 것으로 짐작되며 주석 장석의 테두리는 베갯모와 베개를 고정시키는 장치이다. 나전(螺鈿) 베갯모 /bbs/museum/845/68861/artclView.do 2019-02-27 16:05:49.0 총관리자 나전(螺鈿) 베갯모 20세기 초 12.8cm x 12.8cm 베갯모는 베개의 양 끝부분을 막는 마구리로 목판재를 양각한 목제 베갯모, 영롱한 빛의 자개를 시문한 나전 베갯모, 소뿔에 화려한 색을 칠한 화각 베갯모, 화사한 색실로 수를 놓은 자수 베갯모, 여러 석재로 상감한 석재 베갯모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이 나전베갯모는 소나무 판재 위에 굵은 선과 가느다란 선으로 뇌문을 끊음질기법으로 구성하고 그 안에 십장생 무늬를 줄음질로 오려내어 시문하였다. 사슴, 거북, 학 등의 모습을 조패법인 가느다란 음각선으로 상세하고 사실적으 화각(華角) 베갯모 /bbs/museum/845/68860/artclView.do 2019-02-27 16:05:14.0 총관리자 화각(華角) 베갯모 조선시대 지름 9.8cm 소나무 판재표면을 배가 약간 나오도록 둥글게 깎고 그 표면에 화각을 붙인 베갯모이다. 크기가 아주 작아 소뿔 한 판으로 제작되었다.화각기법은 소뿔을 펴서 편편하게 한 후 얇게 갈아내어 투명한 판을 만들고 검은색으로 무늬의 외곽선을 그린 다음 당채로 채색하고 뒷면에 바탕색을 발라 그려진 면을 목재면에 붙여 장식한다. 주로 여성용 함, 빗접, 실패, 자 등에 이용된다.이 베갯모는 봉황 한 쌍 사이에 새끼 세 마리를 배치하고 봉황의 등과 꼬리 부분의 깃털을 매우 상징적으로 표현하였으며 표주박(瓢子) /bbs/museum/845/68859/artclView.do 2019-02-27 16:04:50.0 총관리자 표주박(瓢子) 조선시대 지름 5.5cm ~ 15cm 표주박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물을 떠먹을 수 있어 먼 거리 여행의 필수품이었다. 조롱박이나 둥근 박의 반을 켜서 만들었는데 쉽게 깨지고 휴대하기에 품위가 없으므로 목재, 지승, 금속 등으로 작게 제작하여 허리춤에 차거나 넣어가지고 다녔다.물푸레나무나 느티나무의 혹의 내부를 파내어 만들었는데 요철이 심한 거친 표면의 형상이 독특해 개성과 자연미가 돋보이므로 선비들이 즐겨 사용하였다. 종류로는 두꺼운 판재로서 화형, 삿갓형, 천도형으로 조각한 것, 야자열매를 반으로 켠 것, 종이를 교의(交椅) /bbs/museum/845/68858/artclView.do 2019-02-27 16:04:18.0 총관리자 교의(交椅) 조선시대 높이 123cm / 폭 44cm / 깊이 26cm 교의는 제사를 드릴 때 제사상 뒤쪽에 주독과 신주, 또는 혼백상자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로 조상의 넋을 편히 모시고 제사음식을 드시도록 만든 상징적인 자리이다. 다리가 길고 높으나 실제로는 제사상에 가려 상단만 보인다. 일반적인 교의는 탁자와 같이 각진 골재로 구성되고 구름이나 기하문이 조각되거나 선각으로 둘러져 있다. 그러나 이 교의는 조각이 없이 둥근 골재로 구성되어 부드러우면서도 단아한 느낌이다. 주독을 올려놓는 상층 널의 삼면 난간은 단순한 형 원형 호족반(元型虎足盤) /bbs/museum/845/68857/artclView.do 2019-02-27 16:03:50.0 총관리자 원형 호족반(元型虎足盤) 조선시대 높이 28.5cm / 지름 39.8cm 일반적인 호족반의 다리는 길고 매끄러운 다리가 특징인데 이 소반은 두껍고 넙적한 다리에 초문과 죽절문이 투각된 육중한 호족형태를 갖추어 건강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이런 호족은 천판의 귀가 양쪽으로 길게 뻗어 위로 휘어진 경상이나 책장에서 천판의 무게를 받쳐주는 힘찬 다리로서 시각적 효과를 나타낸다. 천판이 네모난 사각 호족반도 있으며 주로 경상도 일원에서 제작․사용되었다. 천판 둘레 변죽의 굵은 선 또한 이 지방 특징으로 호족의 강한 느낌에 걸맞는다.느티 주칠 빗접(朱漆梳函) /bbs/museum/845/68856/artclView.do 2019-02-27 16:03:19.0 총관리자 주칠 빗접(朱漆梳函)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33.5cm / 폭 21.8cm / 깊이 32.7cm 주칠이 되어 있는 가구들은 궁중에서 사용하였거나 궁에서 하사된 물품이다. 이 주칠빗접 역시 궁중용으로 짙은 홍칠은 일반인들이 사용하던 아름다운 자연 나뭇결을 살린 가구나 또는 화려한 나전칠기와는 전혀 다른 이색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상단은 함과 같이 경첩을 달았는데 위 뚜껑을 열면 내부에 깊숙하고 너른 공간이 있다. ㄱ자 뻗침목을 위해 천판에까지 넓게 제작한 자물쇠앞바탕은 卍자문을 투각하고 붙박이 거북형 잠금장치를 달아 손쉽게 십장생문 나전빗접(十長生文螺鈿梳函) /bbs/museum/845/68855/artclView.do 2019-02-27 16:02:39.0 총관리자 십장생문 나전빗접(十長生文螺鈿梳函)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34.6cm / 폭 30.0cm / 깊이 29.8cm 화장하고 머리를 빗기 위해서 거울, 빗, 화장도구를 넣어두는 서랍이 달린 좌경을 사용한다. 그러나 지체 높은 집안의 부녀자들은 화장품과 함께 빗, 빗치개, 머리 장식품인 첩지․뒤꽂이․비녀 등의 소도구들을 넣기 위해 여러 개의 서랍이 달린 빗접이 필요하다.이 나전빗접은 하부에 이 층의 서랍을 두고 상부는 함과 같이 뚜껑을 위로 열게 하여 공간을 마련했다. 전면 상단에는 대나무문을 배경으로 출세와 권력을 상징하는 봉황 연상(硯床) /bbs/museum/845/68854/artclView.do 2019-02-27 16:02:10.0 총관리자 연상(硯床)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30.9cm / 폭 41.7cm / 깊이 27.9cm 연상은 벼루와 먹, 연적을 한데 모아 보관하고 사용하기 위한 가구로서 서안과 함께 사랑방가구의 중추적 역할을 하며 서안의 좌측에 놓인다. 천판의 판재형 덮개는 한 개 또는 두 개로 구성되며 판재 바닥에 얕은 턱을 만들어 닫았을 때 밀리지 않도록 하였다. 이 덮개는 무릎이나 서안에 기대어 놓고 글을 쓰는 서판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상하부분에 비해 조금 안으로 들어간 중간층에는 숨은 서랍이 있어 소도구를 넣어 두는데 금속장석 고리나 손잡이 서안(書案) /bbs/museum/845/68853/artclView.do 2019-02-27 16:01:41.0 총관리자 서안(書案)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32.3cm / 폭 67.6cm / 깊이 31.8cm 한국의 전통주택은 방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평좌식(平坐式) 구조이다. 따라서 천정이 낮고 폭이 좁은 실내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에 알맞도록 가구는 높이가 낮고 폭이 좁으며 주로 벽면에 붙여 사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서안과 연상은 글을 읽거나 쓰기 위한 용도로서 방의 중앙에 놓이며 정신적인 면이 강조된 사랑방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서안은 책을 읽거나 간단한 서한문(書翰文)을 작성하는 것 외에 손님과 마주앉은 주인의 위치를 지켜주는 문갑(文匣) /bbs/museum/845/68852/artclView.do 2019-02-27 16:01:13.0 총관리자 문갑(文匣)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34cm / 폭 85.7cm / 깊이 25.5cm 안방의 보료 옆이나 창 밑에 두고 문서·편지·서류 등의 개인적인 물건이나 일상용 기물들을 보관하는 가구이다. 창문 아래쪽 공간에 배치하여 앉은 자세에서 밖을 내다보는데 불편함이 없고 또 유용한 소품들을 올려놓아 장식하거나 내부에 중요 기물들을 보관한다.이 문갑은 두 개가 한 조를 이루는 쌍문갑으로 전면이 막혀 있어 벙어리문갑이라고도 한다. 좌측에서 세 번째 문판을 떼어낸 후 다른 문들을 그쪽으로 밀어서 떼어내는 불편함이 있으나 자주 사용하지 교피 나전 용봉문 상자(鮫皮螺鈿龍鳳文箱子) /bbs/museum/845/68851/artclView.do 2019-02-27 16:00:48.0 총관리자 교피 나전 용봉문 상자(鮫皮螺鈿龍鳳文箱子) 19세기 말 ~ 20세기 초 높이 28.0cm / 폭 67.8cm / 깊이 37.8cm 금속경첩을 달아 뚜껑을 여닫는 것은 함(函), 경첩 없이 뚜껑을 들어내는 것을 상자(箱子)라 부른다.천판의 중심에 거북의 등껍질인 대모(玳瑁)로써 천도(天桃)를 시문하고, 용과 봉황을 상어 껍질인 교피(鮫皮)로써 사면을 연결되게 시문하였는데 윤곽이 드러나도록 두 줄의 동선을 꼬아 선(線)을 형성하였다.커다란 구름은 휘어져 있는 자개를 무늬대로 오려낸 후 표면을 망치로 때려 바닥에 닿게 하는 타발 약장(藥欌) /bbs/museum/845/68850/artclView.do 2019-02-27 16:00:22.0 총관리자 약장(藥欌)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97.7cm / 폭 87.0cm / 깊이 42.2cm 약장은 한약재를 담아 보관하는 장으로 약재의 종류에 따라 많은 서랍이 필요하며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위한 서랍의 연속적인 배열로 독특한 조형미가 있다.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대형 약장과 대가에서 상비약을 넣어두는 중소형 약장이 있다.이 약장은 소량의 약재를 보관하는 가정용이다. 천판의 양쪽 귀가 위로 올라간 점을 고려하여 하단의 다리는 외반된 호족을 사용하여 상부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호족에 초문과 죽절문을 투각한 전형적인 책장 또 나전 의걸이장(螺鈿欌) /bbs/museum/845/68849/artclView.do 2019-02-27 15:59:45.0 총관리자 나전 의걸이장(螺鈿欌) 1940년 경 높이 195cm / 폭 111cm / 깊이 49.5cm 일반적인 장이나 농은 옷들을 포개어 보관하게 된다. 반면 의걸이장은 내부 상단에 횃대를 설치하여 자주 입는 옷이나 두루마기 등을 걸쳐 놓아 구기지 않게 만든 형식인데 하단에는 관모 등 여러 가지 기물들을 넣게 되어 있다. 근대에는 양복을 옷걸이에 걸어 내부의 횃대에 걸어두는 의걸이장 형식의 장이 널리 보급되었다.이 나전장 또한 전통 의걸이장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중간 부위에 서랍을 설치하여 작은 기물의 수납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전 뒤주 /bbs/museum/845/68848/artclView.do 2019-02-27 15:58:45.0 총관리자 뒤주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98cm / 폭 99.6cm / 깊이 51.2cm 뒤주는 쌀을 비롯하여 보리, 콩, 깨 등 곡물을 넣어두는 궤의 일종이며, 쌀을 넣는 대형에서 깨를 넣은 소형까지 형태와 크기에서 다양하다. 또 곡간이나 광에 두지 않고 대청에 놓아둠으로써 매일 편리하게 사용하였다. 무거운 곡물을 넣고 쥐나 벌레들로부터 안전해야 하므로 튼튼한 소나무 판재로 굵고 높은 기둥과 다리를 세웠다. 이 뒤주는 상단에 쌀을 넣는 커다란 공간이 있고, 하단은 찬장이나 일반 장농의 분할형식을 갖고 있는데 여닫이문 안에는 보리, 콩, 머릿장 /bbs/museum/845/68847/artclView.do 2019-02-27 15:58:03.0 총관리자 머릿장 조선시대 높이 82cm / 폭 86.5cm / 깊이 42.1cm 머릿장은 주인의 머리맡에 놓아두고 귀중품이나 자주 사용하는 기물들을 넣어두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앉거나 누었을 때 시각적인 부담감을 주지 않는 작고 나지막한 크기이다.이 머릿장은 전형적인 장과 농의 면분할 방식을 따른 이층장이나 삼층장의 상부 한 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의 여성용 머릿장이다. 천판의 개판이 길게 뻗어 있어 소형 함이나 작은 여성용품들을 올려놓고 장식할 수 있으며 내부에는 문서, 노리개, 열쇠 등 중요 기물을 넣어 보관한다. 하단의 삼층 찬장(三層饌欌) /bbs/museum/845/68846/artclView.do 2019-02-27 15:57:37.0 총관리자 삼층 찬장(三層饌欌)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164.2cm / 폭 87.1cm / 깊이 41.2cm 찬장은 찬방이나 대청 한 쪽에 놓여져 음식이나 여러 종류의 그릇들을 보관하는 주방가구이다. 무거운 유기나 자기로 만든 그릇의 하중(荷重)을 충분히 감당해야 하며, 음식냄새로 인해 쥐나 좀이 먹기 쉬우므로 튼튼하고 안전한 구조와 적절한 목재의 선택이 필요하다. 따라서 습기에 강하고 단단한 소나무 골재와 무늬가 좋은 느티나무 판재를 사용하는 것이 통례이다. 일반적인 삼층 찬장은 1,2층은 장과 농의 분할처럼 여닫이문 양측면의 쥐벽 삼층 책장(三層冊欌) /bbs/museum/845/68845/artclView.do 2019-02-27 15:56:32.0 총관리자 삼층 책장(三層冊欌)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164.2cm / 폭 41.2cm / 깊이 37.1cm 전체를 3등분하여 상부의 두 개 층에는 기둥에 벽선을 두고 경첩을 달아 여닫이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게 하였다. 이는 의복을 넣어두는 기능보다는 책이나 문방구류를 넣어두는 구조에 적합하다. 여닫이문에는 격자 창살 위에 종이를 바른 다음 그 위에 산수도(山水圖)와 산수인물도(山水人物圖), 화조도(花鳥圖)와 어훼도(魚卉圖)를 붙였으며 테두리는 비단헝겊을 발랐다. 흰색 테두리는 근래에 발라져 강하게 눈에 띄나 색이 중화되면 전체가 이층농(二層籠) /bbs/museum/845/68844/artclView.do 2019-02-27 15:55:31.0 총관리자 이층농(二層籠)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119cm / 폭 81.8cm / 깊이 35.5cm 인위적인 조각이나 화려한 칠보다는 자연적인 나뭇결을 살려 순수미를 강조하는 것이 한국목가구의 특성이다. 그러나 뚜렷한 자연 목리는 한서(寒暑)의 차이로 생성된 것이므로 건습에 매우 민감하다. 때문에 목리가 아름다운 느티나무나 먹감나무 등은 넓은 판재로서 이용할 수 없으며 또한 좋은 무늿결도 손쉽게 구할 수 없으므로 골재에 얇은 판재를 끼워 넣는 면분할 형식이 발달되었다.이 이층농은 먹감나무 판재를 좌우로 대칭시켜 안정되면서 아름다운 목 주칠 이층농(朱漆二層籠) /bbs/museum/845/68843/artclView.do 2019-02-27 15:54:55.0 총관리자 주칠 이층농(朱漆二層籠)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140.0cm / 폭 76.5cm / 깊이 35.6cm 깊고 뚜껑이 있는 고리짝을 쌓아 놓으면 아래층에 넣어둔 의복이나 천 등을 꺼내고 넣기에 불편하므로 네모난 궤의 전면에 여닫이문을 달아 사용에 편리하도록 발전시킨 것이 이층농이다. 사계절에 따른 다양하고 많은 의복을 보관하기 위해 장과 농이 발달하였으며 비교적 좁은 주택 구조를 고려하여 2, 3층으로 쌓아두게 되었다.목재는 수축팽창의 변화가 적은 오동나무나 무늿결이 없고 넓은 판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은행나무, 가래나무 등이 나전 구갑문 이층농(螺鈿龜甲紋二層籠) /bbs/museum/845/68842/artclView.do 2019-02-27 15:54:21.0 총관리자 나전 구갑문 이층농(螺鈿龜甲紋二層籠)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111cm / 폭 76.8cm / 깊이 37cm 이 농은 문판을 중심으로 상하와 양 측면에 넓은 판재를 댄 초기 형식이다. 온습조절이 용이하여 의복 보관에 제격인 오동판재를 사용하였는데, 색이 밝고 무른 목재 표면을 뜨거운 인두로 지져 태운 후 볏짚으로 문질러 단단한 결을 남기는 낙동법(烙桐法)으로 처리했다. 검붉은 색감이 안정된 분위기를 풍긴다. 나전구갑문은 자재를 국수처럼 가늘고 길게 오려낸 후 끊어가며 시문하는 끊음질기법을 사용하는데, 이층농 전면이나 양 측면 자수이층농(刺繡二層籠) /bbs/museum/845/68841/artclView.do 2019-02-27 15:53:41.0 총관리자 자수이층농(刺繡二層籠)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138.7cm / 폭 77.4cm / 깊이 42.5cm국가민속문화재 제59호 의복을 넣어두는 농과 장에는 느티나무나 먹감나무의 목리로써 아름다움을 나타낸 장, 대나무를 모자이크한 장, 자개를 오려붙인 영롱한 빛의 나전장, 소뿔을 펴서 얇게 갈아낸 판에 화려한 색으로 그림을 그린 화각장 등이 있다. 천에 자수를 놓고 목재 바탕에 바른 혼수함과 소형의 자수버선장이 있으나 이처럼 대형 이층농의 전면에 자수를 사용한 예는 매우 드물다. 이 수농(繡籠)은 조선조 23대 순조비(純祖妃)인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