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 게시판 2.0 /data/nasdata/homepage/JWIZARD_7.0.0_smu/sites/museum/ ko 청동 등잔받침(靑銅燈盞臺) /bbs/museum/847/68920/artclView.do 2019-03-01 17:33:09.0 총관리자 청동 등잔받침(靑銅燈盞臺) 조선시대 높이 22cm 아랫부분에는 원반형의 받침을 두어 등잔(燈盞)을 올려놓도록 만들었고 받침 측면에 두개의 기둥을 세워 그 끝단이 서로 합쳐지도록 아치형의 장식을 꾸몄다. 기둥 중간에는 움직이지 않도록 연결봉이 가로질러 있으며 양 기둥의 상부 쪽과 중앙 상단에 새 형태의 돌출장식이 5곳에 표현되었지만 그다지 정교하지 못하다. 조선시대에 목제로 만든 등잔받침의 예는 많지만 금속제는 드문 편으로서 조선시대 후기에 제작으로 추정된다. 청동추(靑銅鎚) /bbs/museum/847/68919/artclView.do 2019-03-01 17:32:39.0 총관리자 청동추(靑銅鎚) 조선시대 높이 4cm 무게를 재는 저울추의 하나로써 방형의 곽으로 된 몸체에는 뒷면에 '전사량 공조(前四兩 工曹)'의 명문이 양각되어 있고 앞면은 '중일근 후삼근(中一斤 後三斤)'의 무게가 기록되어 있다. 현재 몸체의 상부는 현재 일부 결실되었지만 다른 저울추의 예로 미루어 화형(花形), 또는 반원형(半圓形)의 고리를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몸체 아래쪽은 중간을 잘록하게 좁히고 아래로 가면서 2~3단의 단을 이루도록 받침부를 만들었다. 고려시대의 작품도 일부 남아있지만 이 저울추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청동국자 /bbs/museum/847/68918/artclView.do 2019-03-01 17:32:09.0 총관리자 청동국자 조선시대 길이 26cm 국자의 아래쪽은 직립된 구연에 하저부가 둥근 그릇 형태이며 그 한쪽에 단면 원형의 긴 손잡이가 달린 모습이다. 국자의 몸체 부분은 운두가 깊고 폭이 넓어 실용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특히 손잡이 끝단을 비녀에서나 볼 수 있는 용머리 형태로 조각하여 놓았음이 주목된다. 그리고 용의 입부분에는 걸 수 있도록 소공을 뚫어 놓은 점을 볼 수 있다. 세부 문양은 전혀 표현되지 않았고 용두(龍頭)도 비교적 단순히 처리되어 조선시대의 제작으로 추정된다. 금동약사불입상(金銅藥師佛立像) /bbs/museum/847/68917/artclView.do 2019-03-01 17:31:41.0 총관리자 금동약사불입상(金銅藥師佛立像) 통일신라시대 9세기 높이 8.5cm 전체적으로 도금(鍍金)이 벗겨지고 한쪽 손의 손가락, 그리고 무릎 아래의 발 부분이 결실되어 남아 있지 않지만 통일신라 불상의 양식을 잘 구비하고 있는 작품이다. 머리는 중앙에 육계(肉髻)가 높이 솟아있으나 나발(螺髮)은 표현되지 않았다. 방형에 가까운 넙적한 얼굴은 마모가 심해 세부 표현은 분명치 않지만 미소 띤 모습이 역력하다. 양 귀는 어깨에 닿을 듯 길게 늘어져 있고 양 어깨를 덮은 통견(通肩)의 대의(大衣)는 배 앞에서 다시 양 다리로 갈라지는 전형적인 청동방울 일괄(靑銅鈴) /bbs/museum/847/68916/artclView.do 2019-03-01 17:31:06.0 총관리자 청동방울 일괄(靑銅鈴) 고려시대 지름 2.7~ 7cm 크고 작은 방울들로서 그 중 두 점은 합처럼 두개의 반원형이 합쳐져 구형(球形)을 이루도록 구성된 모습으로 위, 아래 중앙부에 작은 고리가 달린 흔적을 볼 수 있다. 비교적 크기기 큰 한점의 방울은 구형(球形)의 몸체 중간을 길게 틔어 입처럼 표현하였고 그 위아래 몸체에는 기하학적인 형태의 초화문이 양각되었다. 나머지 4점은 납작한 원반형이면서 동물의 얼굴을 모방한 듯 역시 중단을 길게 틔어 입처럼 표현하였고 몸체 뒤쪽 중앙에 소공을 뚫은 방형 고리가 부착되었다. 길게 트 청동 팔비관음부조 원형장식(靑銅八臂觀音浮彫圓形裝飾) /bbs/museum/847/68909/artclView.do 2019-02-28 16:42:39.0 총관리자 청동 팔비관음부조 원형장식(靑銅八臂觀音浮彫圓形裝飾) 고려시대 지름 3cm 비교적 작은 용도 미상의 원형장식이지만 여러 가지 지물(持物)을 들고 있는 모습의 관음상(觀音像)이 부조되어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다. 비교적 큰 얼굴 위로는 보관(寶冠)이 표현되어 있고 양 어깨 위에서 천의(天衣)가 흘러내렸다. 얼굴과 상체에 비해 하체는 매우 짧으며 다리 아래로는 연화좌(蓮華坐)가 표현되었다. 관음상은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아 합장한 두개의 팔과 머리 양 옆, 그리고 가슴과 다리 옆으로 비교적 굵게 묘사된 6개의 팔이 표현되어 팔비관음상( 청동신발(靑童鞋) /bbs/museum/847/68908/artclView.do 2019-02-28 16:42:14.0 총관리자 청동신발(靑童鞋) 고려시대 길이 21.5cm 앞 코가 들리지 않고 전체적으로 그다지 굴곡을 이루지 않은 단아한 모습을 지녀 조선시대의 가죽으로 만든 신발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재질이 청동제이면서 무게가 상당히 무거운 점은 이 신발이 평상시 신는 것이라기보다 장례용(葬禮用) 또는 부장용(副葬用)으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 증명하듯 바닥에도 스파이크처럼 돌기를 돌출시켰는데 그 끝단이 둥글고 꼭지처럼 표현되어 삼국시대 신발처럼 날카롭고 뾰족한 침과는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또한 신발 코 부분을 중심으로 두 줄의 음각선(陰 청동 어룡뉴개(魚龍鈕蓋) 향로 /bbs/museum/847/68907/artclView.do 2019-02-28 16:41:30.0 총관리자 청동 어룡뉴개(魚龍鈕蓋) 향로 조선시대 좌 높이 21.7cm / 폭 14cm 우 높이 21.7cm / 폭 12.3cm 향로(香爐)는 향을 담고 피우기 위한 것으로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인 기원전 중국 한대(漢代)에서 이미 청동제의 박산(博山) 향로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박산 향로가 전래된 사실을 옛 낙랑지역(樂浪地域)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살펴볼 수 있지만, 향로의 본격적인 제작과 사용은 역시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이루어졌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도자기로 만든 여러 형태의 상형 청자(象形靑磁) 향로와 함께 불교 공예 운학문거울(雲鶴文鏡) /bbs/museum/847/68906/artclView.do 2019-02-28 16:41:02.0 총관리자 운학문거울(雲鶴文鏡) 고려시대 지름 13.5cm 원형경으로 작은 원형의 뉴를 가지고 있으며 뉴좌(鈕座)가 없다. 두 마리의 학과 그 사이에 배치된 구름 무늬만으로 이루어져 간결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도상의 동경은 그 예가 흔하지 않은데, 동경에 보이는 학 무늬가 고려청자에 보이는 학 무늬와 매우 흡사하고 중국에서는 그 예가 보이지 않아 고려 독자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유조문거울(四乳鳥文鏡) /bbs/museum/847/68905/artclView.do 2019-02-28 16:40:35.0 총관리자 사유조문거울(四乳鳥文鏡) 고려시대 지름 9.8cm 고려시대 방제된 한경계(漢鏡系) 동경으로, 사유경(四乳鏡)은 둥근 꼭지를 둘러싸고 원권대(圓圈帶)가 둘러지며 내구에 사유(四乳)와 그 사이에 4마리의 서수(瑞獸) 등을 배치하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고려경에서는 무늬 없는 넓은 연부(緣部)가 특징으로 사유(四乳)는 충실히 따르나 사이의 동물무늬를 간략하게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넓은 연부(緣部) 아래쪽 안으로 거치문(鋸齒文)이 둘러지고, 안쪽에는 연호문(連弧文) 대신 원문(圓文) 둘렀다. 뉴(鈕) 외곽의 넓은 무늬 없는 띠 밖으 호주명 거울(湖州鏡) /bbs/museum/847/68904/artclView.do 2019-02-28 16:40:12.0 총관리자 호주명 거울(湖州鏡) 고려시대 좌 가로 6.7cm / 세로 6.7cm 우 지름 13.5cm 중국 송대(宋代)에 이르러 절강성(浙江省)․강소성(江蘇省) 일대 호주(湖州)․소주(蘇州)․항주(杭主)․수주(秀州) 등지에서 다량의 동경이 제작되었는데, 이를 통칭하여 호주경(湖州鏡)이라고 한다. 동의 질이 좋고 장식이 화려하던 당경(唐鏡)이 송대(宋代)에 이르러서는 경의 테두리가 얇아지고 문양도 가늘고 얇게 표현된다. 송대(宋代)를 대표하던 호주경은 문양이 거의 없고, 명문에 ‘호주(湖州)’, ‘소주(蘇州)’ 등 제작지를 표현하거나 쌍앵무문 팔릉형거울(雙鶯八稜形鏡) /bbs/museum/847/68903/artclView.do 2019-02-28 16:39:44.0 총관리자 쌍앵무문 팔릉형거울(雙鶯八稜形鏡) 고려시대 지름 11.3cm 당경(唐鏡)의 하나인 당화쌍앵경(唐花雙鶯鏡)을 방제한 것으로 일본이나 고려에서 많이 보인다. 팔릉형과 오화형이 가장 많으며, 내구에 쌍앵(雙鶯)이나 쌍봉(雙鳳)을 뉴(鈕) 사이에 배치하고 위 아래로 꽃무늬를 두는데 꽃무늬 대신 초화무늬나 구름무늬를 두기도 한다. 내구의 계권(界圈) 역시 대부분 외형과 같은 형식으로 한다. 이 동경은 원형의 뉴(鈕)와 뉴좌(鈕座) 주변을 연주무늬로 둘렀으며, 팔릉형의 내구 안에는 두 마리의 새를 두고 그 사이에는 꽃을 배치하였다. 고려에 화조문 거울(花鳥文柄鏡) /bbs/museum/847/68902/artclView.do 2019-02-28 16:39:23.0 총관리자 화조문 거울(花鳥文柄鏡) 고려시대 지름 9.4cm / 길이 18cm 동경은 외형에 따라 원형경(圓形鏡)과 방형경(方形鏡)으로 구분하며,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끈으로 꿰서 손에 쥐고 사용하는 동경, 손잡이가 달려 있어 손잡이를 들어 비추어 볼 수 있는 병경(柄鏡), 걸거나 매달아서 사용하는 현경(懸鏡)이 있다.병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이 병경은 원형의 내구에 몸을 틀고 앉은 공작과 꽃무늬가 있으며, 외구에는 날거나 노니는 듯한 새 6마리와 연꽃무늬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병모양의 손잡이에서 동경 몸체와 연결된 부분과 손잡이 쌍룡문 거울(雙龍文鏡) /bbs/museum/847/68901/artclView.do 2019-02-28 16:39:01.0 총관리자 쌍룡문 거울(雙龍文鏡) 고려시대 지름 22.6cm 고려경 중 가장 널리 제작된 쌍룡문경은 비교적 동경의 테두리가 두껍고 큰 편에 속한다. 대부분의 쌍룡문경이 꼭지를 중심으로 한 뉴좌(鈕座)와 내구(內區), 외구(外區)가 뚜렷이 구분되어 있는 예가 많은데, 이 동경은 외구가 없고 내구 부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내구에는 용무늬가 대칭으로 표현되었는데, 두 마리의 용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힘차게 날아가며 입을 벌리고 태극무늬로 표현된 여의주(如意珠)를 잡으려고 애쓰는 듯한 모습이 매우 역동적이다. 세부문양과 내구의 물결무늬는 간략 황비창천명 원형거울(煌丕昌天圓形鏡) /bbs/museum/847/68900/artclView.do 2019-02-28 16:38:34.0 총관리자 황비창천명 원형거울(煌丕昌天圓形鏡) 고려시대 지름 14.8cm 전형적인 황비창천경과 달리 무늬가 없는 이 동경은 거울 뒷면 사방으로 네 군데에 ‘황비창천(煌丕昌天)’ 명문만 새기고 있어서 매우 독특하다. 황비창천명 팔릉형거울(煌丕昌天八稜形鏡) /bbs/museum/847/68899/artclView.do 2019-02-28 16:38:12.0 총관리자 황비창천명 팔릉형거울(煌丕昌天八稜形鏡) 고려시대 지름 16.5cm 동경의 뒷면에 ‘황비창천(煌丕昌天)’이라는 명문을 가지고 있는 동경을 총칭하여 황비창천경이라 한다. 원뉴(圓鈕)에 좁은 연부(緣部)를 가지며, 원형과 팔릉형이 있다. 상하로 황비는 오른쪽에, 창천은 왼쪽에 놓이며 황(煌)은 皇+火(※글자 조합)로 쓰여 진다. 뉴를 중심으로 아래 부분에 돛을 단 배와 인물이 보이며, 물결무늬가 거울 전면에 표현되어 있다.이 동경은 돛이 뉴의 오른쪽으로 옮겨지고 ‘황비창천’ 명문부분에 방형의 궤가 없으며, 원 안의 삼족오(三足烏)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