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ctId=hist,fnctNo=23 1920-1950 1960-1970 1980-1990 타계 후 년도 내용 1922년 1월 16일 일본 규슈(九州) 사가켄(佐賀県) 다케오(武雄) 탄광지대에서 한국인 이주노동자 문찬이(文贊伊)와 일본인 치와타 타키(千線タキ)의 차남으로 태어나다. 본명은 문안신(文安信). 부친이 호적신고를 일년 늦게 하여 공식 기록은 1923년생이다. 1927년 부친과 귀국, 부친의 고향인 마산 오동동에 거주하다. 1928년 모친과 형이 귀국하여 가족이 함께 살다. 1929년 1929-1937부모가 도일(渡日)하여 조모 슬하에서 성장하다.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 초등학교)에 입학하다. 조모가 별세하여 숙부 슬하에서 성장하다. 부친이 귀국하여 추산동 언덕(현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에 집터를 마련하다. 12세 무렵 '태서명화'라는 화방에 취업하고 14세 무렵 화방을 무상인수하다. 피카소, 세잔, 고갱, 반고흐 등의 화집을 구입, 서양미술을 접하다. 공락관(시민극장) 영화 간판그림을 그리고, 영화 <무도회의 수첩> 흥행권을 매입하는 등 어린시절부터 강한 생활력을 보여주다. 1938년 초등학교 동창과 함께 밀항하여 도일하다. 1939년 일본미술학교 양화과 입학하다. 1942년 이과전에 풍경화와 정물화를 출품하지만 낙선하다. 입선작의 수준에 실망하여 공모전은 출품하지 않기로 결심하다. 1943년 도쿄(東京) 이케부쿠로(池袋) 몽파르나스 시나마치(椎名町) 예술인촌에 입주해 후쿠자와 이치로(福沢一郎) 등과 교유하고, <자화상>을 그리다. 일본미술학교를 수료하다.무대장식, 포스터 제작, 간판그림, 목공, 구두닦이 등으로 학비를 벌어 현 미술관 부지인 추산동 땅을 매입하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귀국하다. 1946년 마산다방에서 일본에서 제작한 작품과 <고기잡이> 등 신작을 발표하다. 1947년 5월 서울 동화화랑에서 열린 《조선미술동맹전》에 참여하다. 6월 마산백화점에서 개최된 전국적인 규모의 마산 최초 종합미술전시 《제1회 미술전람회》에 <잔설>을 출품하다. 1947년 1947-1948마산중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다. 1948년 3월 서울 동화화랑에서 《제1회 문신양화개인전》을 개최해 <가을하늘> 등 30여 점의 유화를 발표하다. 길진섭이 전시 서문에서 문신의 '솔직한 소박성'을 높이 평가하다. 1949년 6월 서울 동화화랑에서 《제2회 문신양화개인전》을 개최해 <무학산> 등 30여 점의 유화를 발표하다. 근원 김용준이 전시 평문에서 나라의 현실과 자연에 뿌리박은 문신의 작품이 획기적이라고 예찬하다. 전시 수익금으로 마산 추산동 집터에 석축을 쌓다. 1950년 3월 부산 남포동 국제구락부에서 열린 《종군화가단 전쟁미술전》에 <위생병>, <정박> 등을 출품하다. 《50년미술협회》에 추천되었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전시가 취소되다. 5월 부산 미국문화관(현 부산근대역사관)에서 열린 《혁토회전》에 출품하다. 8월 거창사건 관련자로 수감, 사형 선고 받았으나 혐의 없음으로 3개월이 지난 11월 석방되다. 1952년 3월 부산 대도회다원(大都會茶園)에서 열린 《3.1기념 제4회 종군화가 미술전》에 <피난민>, <경비선> 등을 출품하다. 5월 권옥연, 이준, 김훈과 함께 부산 미화당화랑에서 《제1회 후반기(後半期)전》을 개최, <하꼬방>, <다보탑> 등 유화를 발표하다.이성숙과 결혼하다. 1953년 3월 후반기미술회 주최로 부산 미화당화랑·르네상스화랑다방에서 《제3회 문신전》을 개최해 <군계> 등 유화 23점을 발표하다. 12월 마산 등대사랑 다방에서 열린 《제1회 문총 마산지부 미술전》에 최영림, 이림, 정상화 등과 함께 참여하다. 《3.1 기념미술전》(유엔한국재건본부, 부산), 《마산 미국공보원(USIS) 개원 1주년 기념전》에 참여하다.아버지 별세, 장남 장철 태어나다. 1954년 1월 최순우가 기획한 국립박물관 《한국현대회화특별전》에 <제작하는 자화상>을 출품하다. 《제2회 문총 마산지부 미술전》(비원사랑, 마산), 조각 <남자 나상>을 제작하다. 1955년 3월 전혁림, 이림과 함께 마산 미군부대에서 《한미 친선 3인전》을 개최하다. 11월 마산 백랑다방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다. 경남미술가협회 초대 회원으로 활동하다. 장녀 장옥 태어나다. 1956년 이혼 후 활동 무대를 서울로 옮기다. 명동 동방살롱, 휘가로 등에 출입하면서 한묵, 박고석 등과 교유하다. 1957년 11월 서울 화신화랑에서 열린 《제2회 모던아트협회전》에 <황혼> 등 유화 5점을 출품하다. 1958년 6월 서울 화신화랑에서 열린 《제3회 모던아트협회전》에 <조롱(鳥籠)> 등 유화 5점을 출품하다. 11월 서울 동화화랑에서 열린 《제4회 모던아트협회전》에 <소>등 유화 3점을 출품하다. 1959년 10월 마산 은하수다방에서 열린 《제5회 흑마전》에 참여하다. 12월 서울 국립도서관화랑에서 열린 《제5회 모던아트협회전》에 <작품 A> 등 유화 3점을 출품하다. 한묵과 누하동 구옥을 공유하며 작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