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ctId=bbs,fnctNo=845 RSS 2.0 22 건 게시물 검색 제목 작성자 검색어 입력 공통(상단고정) 공지 게시글 게시글 리스트 나전(螺鈿) 베갯모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133 첨부파일 0 나전(螺鈿) 베갯모 20세기 초 12.4cm x 12.4cm 거치문과 빗살문으로 둘레를 치장하고 그 안에 모란문을 중심으로 한 쌍의 봉황과 여덟 마리의 새끼들을 시문하였다. 이는 구봉침(九鳳枕)이라 하여 자손의 번창을 축원하는 상징으로 일반적으로 일곱 마리의 봉황을 그린다. 모란과 봉황의 사실적 표현을 위해 정교한 음각선을 둘렀다. 소형의 네모난 베갯모는 남자아이가 사용하던 것으로 짐작되며 주석 장석의 테두리는 베갯모와 베개를 고정시키는 장치이다. 나전(螺鈿) 베갯모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203 첨부파일 0 나전(螺鈿) 베갯모 20세기 초 12.8cm x 12.8cm 베갯모는 베개의 양 끝부분을 막는 마구리로 목판재를 양각한 목제 베갯모, 영롱한 빛의 자개를 시문한 나전 베갯모, 소뿔에 화려한 색을 칠한 화각 베갯모, 화사한 색실로 수를 놓은 자수 베갯모, 여러 석재로 상감한 석재 베갯모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이 나전베갯모는 소나무 판재 위에 굵은 선과 가느다란 선으로 뇌문을 끊음질기법으로 구성하고 그 안에 십장생 무늬를 줄음질로 오려내어 시문하였다. 사슴, 거북, 학 등의 모습을 조패법인 가느다란 음각선으로 상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네모난 소형 베갯모는 남자아이의 것으로 장수를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담고 있다. 둘레의 구멍은 실로 베개에 고정시키기 위한 바늘구멍이다. 화각(華角) 베갯모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083 첨부파일 0 화각(華角) 베갯모 조선시대 지름 9.8cm 소나무 판재표면을 배가 약간 나오도록 둥글게 깎고 그 표면에 화각을 붙인 베갯모이다. 크기가 아주 작아 소뿔 한 판으로 제작되었다.화각기법은 소뿔을 펴서 편편하게 한 후 얇게 갈아내어 투명한 판을 만들고 검은색으로 무늬의 외곽선을 그린 다음 당채로 채색하고 뒷면에 바탕색을 발라 그려진 면을 목재면에 붙여 장식한다. 주로 여성용 함, 빗접, 실패, 자 등에 이용된다.이 베갯모는 봉황 한 쌍 사이에 새끼 세 마리를 배치하고 봉황의 등과 꼬리 부분의 깃털을 매우 상징적으로 표현하였으며 하늘에 상서로운 구름을 깃들였다. 한 쌍의 봉황과 일곱 마리의 새끼를 그려 넣어 구봉침이라 부르며 자손번창을 기원하였는데 그 무늬의 일부가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황색 바탕에 주황, 녹색, 백색이 서로 강한 대비를 갖고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소뿔이 약간 노랗게 변하여 색들이 중화되고 순정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표주박(瓢子)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246 첨부파일 0 표주박(瓢子) 조선시대 지름 5.5cm ~ 15cm 표주박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물을 떠먹을 수 있어 먼 거리 여행의 필수품이었다. 조롱박이나 둥근 박의 반을 켜서 만들었는데 쉽게 깨지고 휴대하기에 품위가 없으므로 목재, 지승, 금속 등으로 작게 제작하여 허리춤에 차거나 넣어가지고 다녔다.물푸레나무나 느티나무의 혹의 내부를 파내어 만들었는데 요철이 심한 거친 표면의 형상이 독특해 개성과 자연미가 돋보이므로 선비들이 즐겨 사용하였다. 종류로는 두꺼운 판재로서 화형, 삿갓형, 천도형으로 조각한 것, 야자열매를 반으로 켠 것, 종이를 꼬아 엮은 지승표주박이 있다. 이런 형태 위에 옻칠을 두껍게 발라 방수효과와 함께 모양새가 나도록 만들었다. 교의(交椅)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594 첨부파일 0 교의(交椅) 조선시대 높이 123cm / 폭 44cm / 깊이 26cm 교의는 제사를 드릴 때 제사상 뒤쪽에 주독과 신주, 또는 혼백상자를 올려놓는 다리가 긴 의자로 조상의 넋을 편히 모시고 제사음식을 드시도록 만든 상징적인 자리이다. 다리가 길고 높으나 실제로는 제사상에 가려 상단만 보인다. 일반적인 교의는 탁자와 같이 각진 골재로 구성되고 구름이나 기하문이 조각되거나 선각으로 둘러져 있다. 그러나 이 교의는 조각이 없이 둥근 골재로 구성되어 부드러우면서도 단아한 느낌이다. 주독을 올려놓는 상층 널의 삼면 난간은 단순한 형태의 풍혈로 뚫려있고 이를 받치고 있는 긴 풍혈 또한 매우 단순하다.제구의 표면은 일반적으로 검은 칠이나 이 교의는 은행나무의 밝은 재질에 옻칠을 두껍게 입혀 자연스런 붉은빛이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제구들은 조상의 혼을 거룩하게 모시려는 의도로 어느 가구보다도 정성을 다하여 제작되었으며 정신적인 면이 강조되어 절제된 선으로 인해 간결하면서 묵직한 분위기를 낸다. 원형 호족반(元型虎足盤)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968 첨부파일 0 원형 호족반(元型虎足盤) 조선시대 높이 28.5cm / 지름 39.8cm 일반적인 호족반의 다리는 길고 매끄러운 다리가 특징인데 이 소반은 두껍고 넙적한 다리에 초문과 죽절문이 투각된 육중한 호족형태를 갖추어 건강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이런 호족은 천판의 귀가 양쪽으로 길게 뻗어 위로 휘어진 경상이나 책장에서 천판의 무게를 받쳐주는 힘찬 다리로서 시각적 효과를 나타낸다. 천판이 네모난 사각 호족반도 있으며 주로 경상도 일원에서 제작․사용되었다. 천판 둘레 변죽의 굵은 선 또한 이 지방 특징으로 호족의 강한 느낌에 걸맞는다.느티나무 천판에 견고하게 붙어 있는 운각에 호족을 깊게 끼우고 천판에서 호족 상부의 긴촉으로 굵은 대나무 못을 박아 고정시켰다. 두 다리 사이의 족대는 굵은 각재의 아랫부분에 초형의 풍혈을 두어 장식했다. 주칠 빗접(朱漆梳函)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377 첨부파일 0 주칠 빗접(朱漆梳函)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33.5cm / 폭 21.8cm / 깊이 32.7cm 주칠이 되어 있는 가구들은 궁중에서 사용하였거나 궁에서 하사된 물품이다. 이 주칠빗접 역시 궁중용으로 짙은 홍칠은 일반인들이 사용하던 아름다운 자연 나뭇결을 살린 가구나 또는 화려한 나전칠기와는 전혀 다른 이색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상단은 함과 같이 경첩을 달았는데 위 뚜껑을 열면 내부에 깊숙하고 너른 공간이 있다. ㄱ자 뻗침목을 위해 천판에까지 넓게 제작한 자물쇠앞바탕은 卍자문을 투각하고 붙박이 거북형 잠금장치를 달아 손쉽게 여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아랫부분의 갑게수리 형식의 여닫이문을 열면 내부에 서랍이 들어 있다. 제비초리형 경첩을 측널과 만나는 부분에 고정시켜 문짝을 활짝 열어젖힌 후 내부의 서랍을 쉽게 꺼낼 수 있게 했다. 여의두문 숨은 자물쇠 앞바탕 장석에는 열쇠구멍과 함께 우측으로 밀어서 여는 빗장 촉이 있다. 하단의 족통은 밖으로 외반 되어 상체를 안전하게 받치고 있다.문판의 네 귀퉁이에 귀장석을 대어 모서리 부분을 보호하고, 각 면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에도 박쥐형 또는 고추잎형 거멀잡이장석들을 붙여 견고히 하였다. 또한 장석에 조이질로 초문을 음각하여 한층 화려하고 정성이 깃든 공예미를 표출하고 있다. 십장생문 나전빗접(十長生文螺鈿梳函)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550 첨부파일 0 십장생문 나전빗접(十長生文螺鈿梳函)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34.6cm / 폭 30.0cm / 깊이 29.8cm 화장하고 머리를 빗기 위해서 거울, 빗, 화장도구를 넣어두는 서랍이 달린 좌경을 사용한다. 그러나 지체 높은 집안의 부녀자들은 화장품과 함께 빗, 빗치개, 머리 장식품인 첩지․뒤꽂이․비녀 등의 소도구들을 넣기 위해 여러 개의 서랍이 달린 빗접이 필요하다.이 나전빗접은 하부에 이 층의 서랍을 두고 상부는 함과 같이 뚜껑을 위로 열게 하여 공간을 마련했다. 전면 상단에는 대나무문을 배경으로 출세와 권력을 상징하는 봉황문, 장수를 뜻하는 소나무와 사슴을 문양대로 오려내는 줄음질과 음각으로 무늬를 새기는 조패법을 사용하여 시문했다. 중간 두 개의 서랍은 국수처럼 가늘고 길게 오려내어 끊어가는 끊음질기법으로 구갑문(龜匣紋)을 새겼다. 하단의 긴 서랍에는 장수를 뜻하는 구름, 해, 거북, 부부의 금실과 자손번창을 뜻하는 원앙과 연을 시문하여 여성들이 기원하는 바를 잘 표출하고 있다. 천판에는 복숭아와 운학, 양측면에는 대나무와 매화를 원형테두리 안에 두었다. 전면 상단의 바탕쇠에는 거북형 붙박이잠금장치가 달려 있고 각 모서리에 귀장석을 비롯한 거멀잡이장석들이 장식성을 강조하고 있다. 영롱한 자개빛과 정성들인 자개무늬들이 흑칠 바탕 위에 잘 드러나고 있으며 하단의 붉은 족통이 시각적으로 상체를 떠받치고 있다.이런 형식의 나전빗접들은 나전칠기의 본산지인 통영지방에서 생산된 것이 대부분이며, 빗접은 좌경의 옆에 놓이게 되므로 좌경 또한 나전칠기 제품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연상(硯床)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127 첨부파일 0 연상(硯床)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30.9cm / 폭 41.7cm / 깊이 27.9cm 연상은 벼루와 먹, 연적을 한데 모아 보관하고 사용하기 위한 가구로서 서안과 함께 사랑방가구의 중추적 역할을 하며 서안의 좌측에 놓인다. 천판의 판재형 덮개는 한 개 또는 두 개로 구성되며 판재 바닥에 얕은 턱을 만들어 닫았을 때 밀리지 않도록 하였다. 이 덮개는 무릎이나 서안에 기대어 놓고 글을 쓰는 서판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상하부분에 비해 조금 안으로 들어간 중간층에는 숨은 서랍이 있어 소도구를 넣어 두는데 금속장석 고리나 손잡이가 없이 아래공간에서 서랍을 밀어 내도록 하여 단순함을 강조하고 있다. 하단은 사방탁자형 뚫린 공간이 있어 연적, 두루마리 종이 등을 넣게 만들었다. 이런 형식은 대부분 19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이며 그 이전에는 다리가 없는 연갑이나 네다리를 갖고 있는 연상이 초상화를 통해 보이고 있다. 복판과 테두리 변자가 만나는 부분과 하단의 골재 안쪽에 버선코형 선을 둘러 장식했는데 이는 전라도지방의 가구에서 보이는 형식으로 부드러움을 준다. 먹감나무 판재의 자연적인 무늬결이 추상적 회화미를 보이고 있다. 서안(書案)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144 첨부파일 0 서안(書案)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32.3cm / 폭 67.6cm / 깊이 31.8cm 한국의 전통주택은 방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평좌식(平坐式) 구조이다. 따라서 천정이 낮고 폭이 좁은 실내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에 알맞도록 가구는 높이가 낮고 폭이 좁으며 주로 벽면에 붙여 사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서안과 연상은 글을 읽거나 쓰기 위한 용도로서 방의 중앙에 놓이며 정신적인 면이 강조된 사랑방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서안은 책을 읽거나 간단한 서한문(書翰文)을 작성하는 것 외에 손님과 마주앉은 주인의 위치를 지켜주는 용도이다. 겨우 책을 펴놓을 수 있을 정도의 이 작은 서안이야말로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간편하게 이용되었다. 상부의 긴 서랍에는 자주 쓰는 소품들을 넣고, 하단의 넓은 공간은 간단한 서책이나 두루마리 종이, 서한지, 문방제구들을 넣어두는 다목적 기능이다. 문갑(文匣)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527 첨부파일 0 문갑(文匣)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34cm / 폭 85.7cm / 깊이 25.5cm 안방의 보료 옆이나 창 밑에 두고 문서·편지·서류 등의 개인적인 물건이나 일상용 기물들을 보관하는 가구이다. 창문 아래쪽 공간에 배치하여 앉은 자세에서 밖을 내다보는데 불편함이 없고 또 유용한 소품들을 올려놓아 장식하거나 내부에 중요 기물들을 보관한다.이 문갑은 두 개가 한 조를 이루는 쌍문갑으로 전면이 막혀 있어 벙어리문갑이라고도 한다. 좌측에서 세 번째 문판을 떼어낸 후 다른 문들을 그쪽으로 밀어서 떼어내는 불편함이 있으나 자주 사용하지 않는 중요기물을 보관하고 형태가 단순하여 부담을 주지 않는다. 전면은 자연적인 먹이 들어 있는 먹감나무 판재를 좌우 대칭하여 구성하였는데 마치 인위적인 추상화를 그린 듯한 효과를 주고 있다. 교피 나전 용봉문 상자(鮫皮螺鈿龍鳳文箱子)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175 첨부파일 0 교피 나전 용봉문 상자(鮫皮螺鈿龍鳳文箱子) 19세기 말 ~ 20세기 초 높이 28.0cm / 폭 67.8cm / 깊이 37.8cm 금속경첩을 달아 뚜껑을 여닫는 것은 함(函), 경첩 없이 뚜껑을 들어내는 것을 상자(箱子)라 부른다.천판의 중심에 거북의 등껍질인 대모(玳瑁)로써 천도(天桃)를 시문하고, 용과 봉황을 상어 껍질인 교피(鮫皮)로써 사면을 연결되게 시문하였는데 윤곽이 드러나도록 두 줄의 동선을 꼬아 선(線)을 형성하였다.커다란 구름은 휘어져 있는 자개를 무늬대로 오려낸 후 표면을 망치로 때려 바닥에 닿게 하는 타발법(打拔法)을 사용하였으며, 구름사이의 여백에는 동판을 가늘게 오려내어 둥글게 구부려가며 구름 형태를 시문하였는데 이러한 기법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장과 농, 의걸이장에서 나타나고 있다.이 상자는 용과 봉황의 문양과 크기로 보아 관복상자로 추측된다. 약장(藥欌)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621 첨부파일 0 약장(藥欌)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97.7cm / 폭 87.0cm / 깊이 42.2cm 약장은 한약재를 담아 보관하는 장으로 약재의 종류에 따라 많은 서랍이 필요하며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위한 서랍의 연속적인 배열로 독특한 조형미가 있다.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대형 약장과 대가에서 상비약을 넣어두는 중소형 약장이 있다.이 약장은 소량의 약재를 보관하는 가정용이다. 천판의 양쪽 귀가 위로 올라간 점을 고려하여 하단의 다리는 외반된 호족을 사용하여 상부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호족에 초문과 죽절문을 투각한 전형적인 책장 또는 경상의 다리 형태를 갖고 있다. 이로 미루어 주인의 취향과 안목에 따른 사랑방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상부의 상단에는 자주 사용되거나 다량의 약재를 넣는 큰 서랍을 배치하고 그 아래로 한 개의 서랍에 칸을 막아 두 종류의 약재를 보관하였다. 하부의 장농과 같은 분할형식의 여닫이문 안에는 인삼, 녹용, 극약 등 희귀약재를 넣거나 약저울 또는 약을 싸는 한지 등 용품들을 넣어두게 하였다.약재명이 쓰인 연속적이고 정돈된 서랍의 배치와 하부의 면 분할 된 수장부분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서랍을 당기기 위해 금속환고리를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한지를 꼬아 만든 끈을 사용하였다. 하단의 여닫이문에는 자물쇠환고리와 둥근 경첩을 달아 묵직하고 검소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나전 의걸이장(螺鈿欌)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400 첨부파일 0 나전 의걸이장(螺鈿欌) 1940년 경 높이 195cm / 폭 111cm / 깊이 49.5cm 일반적인 장이나 농은 옷들을 포개어 보관하게 된다. 반면 의걸이장은 내부 상단에 횃대를 설치하여 자주 입는 옷이나 두루마기 등을 걸쳐 놓아 구기지 않게 만든 형식인데 하단에는 관모 등 여러 가지 기물들을 넣게 되어 있다. 근대에는 양복을 옷걸이에 걸어 내부의 횃대에 걸어두는 의걸이장 형식의 장이 널리 보급되었다.이 나전장 또한 전통 의걸이장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중간 부위에 서랍을 설치하여 작은 기물의 수납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전통 의걸이장은 나전칠기형식으로 제작된 것이 없으나 이 장은 나전칠기 가구들이 널리 보급되었던 194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복판과 측널 등 넓은 면에는 나전칠기에서 사용하는 도식화된 문양이 아니라 당대의 저명한 화가 관제 이도영(1884-1933)이 그린 구룡연(九龍淵), 만물상 삼선암(萬物相 三仙岩), 총석정(총石亭), 해금강(海金岡) 등의 절경과 해강 김규진(1868-1933)의 매화와 대나무그림을 나전의 줄음질기법으로 표현하였다. 유연한 선과 함께 동양화의 여백의 미를 잘 살렸으나 구름과 물을 입체적으로 표현함에 있어 일본의 칠화기법과 마끼에기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그 당시에 일본 칠기의 영향을 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닫이문의 둘레인 문변자에는 여백을 살린 복판과는 달리 당초문이 연속적으로 둘러져 있어 의걸이장 전체를 화사한 분위기로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경첩이나 손잡이 등은 모두 순은(純銀)으로 되어 있다. 복판과 측널에 그림을 그린 화가의 화제(畵題)와 호(號), 낙관(落款)이 있으며 여닫이문 안쪽 면에 나전칠기 장인 김진갑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로서 특별 주문 생산된 것으로 짐작되며 이에 장인의 우수한 기량이 잘 발휘된 작품으로 보인다. 뒤주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103 첨부파일 0 뒤주 조선시대 19세기 높이 98cm / 폭 99.6cm / 깊이 51.2cm 뒤주는 쌀을 비롯하여 보리, 콩, 깨 등 곡물을 넣어두는 궤의 일종이며, 쌀을 넣는 대형에서 깨를 넣은 소형까지 형태와 크기에서 다양하다. 또 곡간이나 광에 두지 않고 대청에 놓아둠으로써 매일 편리하게 사용하였다. 무거운 곡물을 넣고 쥐나 벌레들로부터 안전해야 하므로 튼튼한 소나무 판재로 굵고 높은 기둥과 다리를 세웠다. 이 뒤주는 상단에 쌀을 넣는 커다란 공간이 있고, 하단은 찬장이나 일반 장농의 분할형식을 갖고 있는데 여닫이문 안에는 보리, 콩, 깨, 좁쌀 등을 자루에 넣어 보관하도록 했다. 상단은 무늿결이 좋은 넓은 느티나무 판재를 사용하여 아름답고 쾌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하단의 판재 또한 느티나무 판재를 대칭으로 안정감 있게 배치하였다. 양 측면 역시 같은 나무를 사용하여 곡물을 보관하는 역할과 함께 장식적인 효과를 겸하고 있다. 자물쇠 앞바탕, 경첩, 거멀잡이쇠 등은 두꺼운 무쇠장석으로 견고하면서 전체 분위기와 잘 어울리고 있다. 머릿장 작성자 총관리자 조회 1096 첨부파일 0 머릿장 조선시대 높이 82cm / 폭 86.5cm / 깊이 42.1cm 머릿장은 주인의 머리맡에 놓아두고 귀중품이나 자주 사용하는 기물들을 넣어두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앉거나 누었을 때 시각적인 부담감을 주지 않는 작고 나지막한 크기이다.이 머릿장은 전형적인 장과 농의 면분할 방식을 따른 이층장이나 삼층장의 상부 한 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의 여성용 머릿장이다. 천판의 개판이 길게 뻗어 있어 소형 함이나 작은 여성용품들을 올려놓고 장식할 수 있으며 내부에는 문서, 노리개, 열쇠 등 중요 기물을 넣어 보관한다. 하단의 견고한 다리가 상체를 안정감 있게 받쳐주고 있다.상하의 네 모서리 부분에 투각칠보문귀장석과 거멀잡이장석을 달아 강조하고, 자물쇠 앞바탕을 중심으로 여닫이문에 경첩, 귀장식과 박쥐형 들쇠를 집중적으로 달았다. 화사한 주석장석이 검붉은 판재와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처음 12 1 2 다음 페이지 끝